예덕선생전
조선 후기 실학 사상가이며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단편. ≪연암집 燕巖集≫권8 별집(別集)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다. 엄행수라는 인물은 서울 종본탑(宗本塔) 동편에 살면서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온갖 똥을 수거하여 서울 근교에 있는 채원업(菜園業)을 하는 농가에 거름으로 제공하고 살아가는 늙은 역부(役夫)이다. 이러한 천한 엄행수를 당대의 명망 있는 선비인 선귤자(蟬橘者)가 그의 덕을 자주 칭찬하고 머지 않아 벗으로 청하려는 것을 안 제자 자목(子牧)이 항의하고 그의 문하를 떠나겠다고 하자, 선귤자는 그를 앉혀놓고 도의지교(道義之交)와 엄행수란 인물의 행동 거취에 대해 극찬하고는, 엄행수를 감히 벗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이라고 호를 지어 바친 이유를 길게 설명해 준다. <방경각외전> ‘자서(自序)’에, “우도(友道)가 오륜(五倫)의 끝에 놓였다고 해서 낮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오행(五行) 중의 토(土)의 기능이 고루 사시(四時)의 바탕이 되는 것과 같다. 부자?군신?부부?장유 간의 도리는 신의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다운 도리 및 사람답지 못한 도리를 우도(友道)가 다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아닌가. 우도가 끝에 놓인 이유는 위에서 인륜을 통섭케 하려는 것이다.…(중략)… 선비가 목구멍 때문에 구차해지면 백 가지 행실이 이지러지고 정식정팽(鼎食鼎烹)은 탐욕을 경계하지 못한 때문이다. 엄행수가 몸소 똥을 쳐서 밥을 먹어, 그의 발은 더러웠지만 입은 깨끗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예덕선생전을 쓴다.”라고 쓰였다. 자서를 통해 보면 조선 후기 등장하기 시작한 임노동 계층(賃勞動階層)의 건실한 삶을 통해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신의를 저버리는 부도덕한 선비를 경계하기 위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는 연암의 營農(영농)과 농지(農地)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