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조선후기 때의 실학자 · 문신. 경기도 광주(지금의 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소내〔召川〕마재〔馬峴〕) 출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 · 탁옹 · 태수(苔?) · 자하도인(紫霞道人) · 철마산인(鐵馬山人) ·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 아버지는 진주목사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두서(斗緖)의 손녀이다. 4남 2녀 중 4남으로 1836년 2월 22일 향리에서 죽었다. 15세 때 풍천홍씨(豊川洪氏)를 취하여 6남 3녀를 두었으나 4남 2녀는 요절하고 학연(學淵) · 학유(學遊)와 서랑 윤창모(尹昌謨)가 있을 뿐이다. 그의 일생은 대체로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제1기는 벼슬살이하던 득의의 사절이며, 제2기는 귀양살이 하던 환난시절이요, 제3기는 향리로 돌아와 유유자적하던 시절이다.